김영하, 김훈 앞세운 독서앱 '오리지널 콘텐츠'...출판계 혁신 vs 물량공세?
전자책도 ‘오리지널 시리즈’ 시대다. 모바일 독서 앱 ‘밀리의 서재’가 최근 소설가 김영하·김훈·공지영 등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작을 독점 선공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최초로 전자책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시작한 밀리의 서재는 한발 더 나아가 유명 작가의
신간을 종이책으로 구독자에게 선공개하는 종이책 정기구독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2030 독자들을 독서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라는 평과 함께
대형 작가 중심 마케팅으로 기존 종이책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한다. 출판계의 혁신인가, 출판계를 고사시킬 ‘물량 공세’일까.
전자책 업체, 독자, 작가, 출판계 입장을 들어봤다.
■출판계의 넷플릭스?
월정액 무제한 구독, 적극적인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이란 점에서 밀리의 서재는 ‘출판계의 넷플릭스’로 불릴 법하다. 월 9900원의 구독료를 내면
5만여권의 소장 도서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2017년 처음 시작했다. 이어 리디북스, 예스24, 교보문고 등이 ‘구독 서비스’
를 도입했다. 밀리의 서재는 지난해 10월부터 기존 구독료에서 6000원을 더 내면 기존 전자책과 함께 유명 작가의 종이책을 일정 기간 독점적으로
볼 수 있는 ‘밀리 오리지널 종이책 정기구독’도 시작했다.
밀리의 서재는 지난 10월 조남주·김초엽·정용준 등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시티픽션>을 시작으로, 소설가 김중혁의 신작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을
지난해 12월 구독자들에게 한정판으로 선공개했다. 앞으로의 ‘라인업’은 더 화려하다. 다음달 15일엔 소설가 김영하가 7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을 공개
하고, 4월엔 소설가 김훈이 최초의 판타지 소설을, 6월·8월엔 각각 백영옥, 공지영의 신작 에세이를 내놓는다. 이들 신작은 2~6개월 후 출판사를 통해
일반 서점에 유통된다.
콘텐츠 플랫폼이 구독자 확보를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고자 하는 흐름은 자연스럽다. 리디북스도 정액제 구독서비스 ‘리디셀렉트’를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여왔다. 소설가 장강명이 2018 SF소설 <노라>를 리디셀렉트의 첫 ‘오리지널 콘텐츠’로 공개했으며, 이후 편혜영의 <우리와
가까운 곳에>, 백영옥의 <어제의 이별학> 등이 공개됐다. 리디북스는 최근 인문·사회·경제 서적 저자들의 칼럼과 뉴욕타임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아티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모바일·구독·한정판으로 2030 취향저격
전솜이 밀리의 서재 매니저는 “독서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자주 보거나,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종이책도 정기구독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기획했다”며 “ ‘최고 작가의 한정판 도서를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가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모바일에 친숙하고, 구독경제에 익숙하며,
한정판 소장 욕구가 있는 2030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라는 것이다.
종이책 구독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배경심씨(28)는 “종이책은 중고서점에서 구매한 후 소장하고 싶지 않은 책은 되팔았다. 밀리의 서재는 월정액만
내면 무제한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종이책 구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김중혁 작가를 좋아했고, 시중에 없는
한정판 책을 나만 갖고 있다는 점이 좋아 구독을 시작했다”고 했다. 임용원씨(31)는 “30년 정도 독서와 담을 쌓고 지내다 밀리의 서재에 가입하면서
추천 도서를 중심으로 읽기 시작해 재미가 붙었다”며 “읽다가 소장하고 싶은 책은 종이책으로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독서시장의 빈틈을 노리는 밀리의 서재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누적 구독자수는 150만명으로, 2030세대의 비중이 높다. 20대
독자 비율이 40%로 가장 높았으며, 30대가 37%로 2030 독자 비율이 77%에 이른다. 교보문고의 지난해 독자 중 40대 이상이 50.1%에 이르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성인의 59.9%만이 책을 읽으며 연간 독서량은 8.3권으로 나타났다.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밀리의 서재 구독자들의 경우 월평균 독서량이 7~8권으로 높은 편이다. 밀리의 서재는 정액제 구독서비스 뿐 아니라 책의 내용을 축약해 음성으로
들려주는 ‘리딩북’, 채팅창 형태로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챗북’, 유튜버와 함께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종이책과 거리가 멀고 영상과
모바일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고 있다.
■‘물량 공세’ 출판계 우려
베스트셀러 작가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밀리의 서재를 바라보는 출판계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어려운 종이책 시장을 위축시킬
거란 우려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를 모델로 내세운 “아직도 책 사러 서점 가요?”라는 문구의 광고는 출판계와 서점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밀리의
서재는 공식 사과하고 해당 광고를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막대한 물량 공세다. 책의 판매 독점은 시민의 독서권, 책의 공공재적 성격을 위축시킨다. 전국의 서점과 도서관, 비회원
독자들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의 가치를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어내고, 종이책을 잘 보지 않는
독자들에게 잠재적 구매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실제 종이책 출간 이후 판매량에 끼치는 영향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티 픽션>을 종이책으로 출간할 예정인 한겨레출판 관계자는 “밀리의 서재의 시도가 독서시장을 위축시킨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대형 작가 위주로
필진이 꾸려진 점은 아쉽다. 다양한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계 관계자는 “책 읽는 문화, 책에 대한 관심사를 확장시키는
것은 출판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밀리의 서재는 종이책 시장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독서 인구를 넓혀 ‘윈윈’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전솜이 매니저는 “밀리의
서재의 주요 타겟은 서점에 가지 않는 분들을 도서시장으로 끌어오려는 것”이라며 “기존 출판사와 다양한 협업을 고민하고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결합한 구독상품은 첫 시도이기 때문에 시장의 반응과 추이를 살펴보며 향후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방향을 조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