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무료대여 서비스’ 금지법안 상정될까?
대형 플랫폼사 중심으로 사실상 ‘영구대여’ 통한 우회 할인 고착화
이번 임시국회에 전자책 무료대여 서비스 금지 법안이 상정될지 여부에 전자책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앞서 전자책 무료대여 금지 법안을 발의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 실무자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등 법안 상정과 관련한 실무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현행 도서정가제에 따르면 전자책도 종이책과 동일하게 정가에서 15% 이상 할인할 수 없다. 이 규정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대여'를 통한 할인이다. 판매가 아닌 대여를 목적
으로 하기에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10년 이상 장기대여함으로 독자에게 사실상 구매와 동일한 효과를 제공할 수 있는 것.
더욱이 최근 들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단말기가 대중화되고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전자책 시장에는 모처럼 화색이 감돌았다. 예스24에 따르면 올 한해 전자책을 구매한 사람은
총 34만명, 읽은 책은 총 430만권으로 지난해 전자책 구매량 200만권의 두 배를 기록했다. 이는 예스24에서 전자책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 이래 역대 최대 수치다.
이처럼 전자책 무료대여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자 지난 10월 27일 전재수 의원을 대표로 조승래ㆍ유은혜ㆍ안민석ㆍ도종환ㆍ손혜원 등 의원 10인은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는 전자
출판물을 무료로 대여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
을 발의한 바 있다.
전 의원 등은 도서정가제가 대여를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아 일부 간행물 판매업자가 무료로 전자출판물을 대여하거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전자출판물의
무료 대여를 강요함에 따라 영세 출판사를 비롯한 전자출판물 유통사가 피해를 입고 있음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책 무료대여 서비스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발의법안이 법제화돼야 영세 출판사와 출판시장 전체를 살릴 수 있다"며 "법안이 회기 내 상정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자책 대여 서비스는 도서정가제 시행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전자책 업계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법이다. 정부가 가격경쟁 심화로 인한 출판유통질서 혼란을 방지하고 동네 영세
서점을 살린다는 취지로 도입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국내 전자책 시장 성장률은 2011년 37.1%에서 2014년 10.9%로 곤두박질쳤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알라딘, 리디북스 등 대형 플랫폼 업체 5곳은 장기대여 서비스로 돌파구를 모색해 왔다. 지난해 말부터 대여 기간을 대폭 늘려왔고
올해 들어서는 장기대여 특집 페이지 등을 별도 개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여 기간이 최장 50년, 할인율이 최대 80% 대에 달하는 등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사실상 영구대여에 가까운 전자책 장기대여 서비스에는 궁극적으로 종이책 독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종이책 독자들은 전자책을 잘 사지 않지만 전자책 독자는
종이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 따라서 신간 도서나 베스트셀러를 50% 할인된 가격에 10년 장기대여 서비스하는 파격 마케팅을 펼치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전자책 업계 관계자는 “전자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전자책을 한 번도 접하지 않은 이들이 굉장히 많다"며 “독자들에게 전자책을 접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게 현재 전자책 시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장기대여가 전자책 헐값 판매 구조를 고착화하고 전자책의 콘텐츠 가치를 하락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자금력 있는 대형
플랫폼사만이 구가할 수 있는 박리다매 전략으로, 장기대여 중심으로 전자책 시장이 재편된다면 중소 사업자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네 서점 살리자고 만든 도서정가제가 장기대여라는 변종 판매를 낳고 이로 인해 중소 전자책 유통업체는 더욱 입지가 좁아진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대형 플랫폼
사들은 도서정가제 우회 방안만 모색할 것이 아니라 전자책의 콘텐츠 가치를 높이는 발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