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특집] 프로 의심러의 예스24 북클럽 체험기 – 신예희 작가
2019.03.13 14:56
<월간 채널예스> 2019년 3월호 특집
애초에 책이란 손맛이다. 종이를 촤라락 넘기는 맛이 있어야 진짜 책이지, 라고 목 놓아 주장하던 내가 크레마를 사다니, 전자책을 읽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 (2019. 03. 04)
일 년 전, 큰맘 먹고 이북 리더를 영접하였다… 라고 하니 경애하는 이북의 리더 동지를 만난 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건 아니고요,
그간 고집스레 외면해온 이북(e-book) 즉 전자책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 크레마 그랑데를 샀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큰 사건인데, it 관련 신문물 앞에만 서면 자꾸 작아지는 사람이라 그렇다. 음악만 해도 테이프에서 CD로, 다시 MP3
파일로 건너가는데 남들보다 꽤 긴 시간이 걸렸다. 2G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는 데도 한참을 망설였다. 신문물이라면 일단 남들
쓰는 것 좀 구경하고, 쓸 만한지 아닌지 내 성에 찰 만큼 얘기도 실컷 들어본 다음 천천히 결정한다. 신중하다면 신중한 거고, 재미없다면
참 재미없다. 그러고 보니 운전도 마흔 넘어서 어렵게 시작했지 뭐겠습니까. 자랑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스마트폰을 10년 가까이 사용하면서 좀 달라지긴 했다. 매일같이 당연한 듯 요걸로 뉴스를 읽고 웹툰을 보고 음악을 듣고 유튜브
영상을 본다. 하지만 책은 다르지.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고, 눈이 부시다. 아이패드는 무겁다. 그리고 애초에, 책이란 손맛이다.
종이를 촤라락 넘기는 맛이 있어야 진짜 책이지… 라고 목놓아 주장하던 내가 크레마를 사다니, 전자책을 읽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
계기는 여행이었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2~3주간 여행을 떠나는데, 거의 항상 혼자라 반드시 책을 여러 권 챙겨간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무척 즐겁고 로맨틱한 일이지만 가방이 더럽게 무거워지는 게 문제다. 타협 끝에 세 권 정도만 넣어도 부피며 무게가 벌써
부담스럽다. 이동 중에 책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막막하다.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책이 재미없을 땐 우와, 진짜 당황스럽다. 너무 재미있어서
여행 첫날 몽땅 읽어버려도 문제다. 말 나온 김에,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게 얼마나 까다롭고 골치 아픈 일인가에 대해선 프랑수아
아르마네의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을 참고하시라. 무인도에 갇힐 때 챙겨갈 책 세 권을 골라 달라는 저자의 질문에 대한 작가 196명의
대답을 엮은 책이다.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이 책을 추천받아 읽으며, 만일 나라면 어떤 책 세 권을 고를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하이고,
세 권 갖고는 역시 턱도 없다. 뭘 들고 가든 결국 목말라 하겠지.
문제는, 작년의 여행은 그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몇 주가 아니라 몇 개월의 긴 여행이자 체류가 될 거라 못해도 열권, 마음 같아선 스무
권쯤은 들고 가야 하는데 이를 어쩐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군, 막다른 골목이야, 라며 전자책 리더기를 요리조리 비교한 끝에 크레마
그랑데를 영접했는데…
여러분. 제가 물건이 좋지 않으면 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의심이 더럽게 많고 뜸도 더럽게 들입니다. 돌다리도 그냥 두들기는 게 아니라
남들 두들기는 거 숨어서 충분히 본 다음에야 슬쩍 발끝으로 건드리는 사람이에요. 그런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이 물건은 좋은 물건이다.
눈이 시리거나 부시지 않고, 화면 밝기와 색온도 조절이 가능하며, 글자 크기를 키울 수 있다(40대 중반에게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무엇보다 가볍다. 정말 가볍다! 여행 중이든 아니든, 가방에 요거 하나쯤 더 집어넣는다고 해서 부담될 무게도 부피도 아니다. 덕분에 오며
가며 책을 한 장이라도 더 읽게 된다. 두꺼워서, 무거워서, 부담스러워서 반쯤 포기했던 책도 크레마로 읽으니 한결 가뿐하게 다가온다.
책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색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앞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간 인물이 중간쯤 다시 등장하면, 어라 얘가
누구더라 싶거든요. 그럴 때 검색을 통해 아, 야가 갸여? 하게 된다. 저는 이 기능을, 특히 러시아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잘 써먹고 있습니다
(멀리 바라보는 눈). 아쉬운 점은, 기계가 한없이 느리다는 것이다. 켜고 끄는 데만도 하세월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여유
넘치는 갬성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뻥이고 아주 그냥 속이 터진다. 제조사, 보고 있나!
하여튼 크레마 그랑데를 산 이후 나의 독서 생활은 확 바뀌었다. 역시 우리 경애하는 이북 리더님은 최고시다.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언제든
새로운 책을 골라 다운받는다. 덕분에 가지고 있던 책을 상당히 정리해, 집안이 넓어지고 밝아졌다. 그전까진 예스24에 접속해서도 전자책
메뉴를 클릭할 일이 없었는데 이젠 거기부터 들어간다. 나 같은 의심맨을 유혹하기 위해서인지, 전자책 혜택은 꽤 쏠쏠하다. 90일 기한으로
책을 대여할 때 쓸 수 있는 30% 할인쿠폰이라던가, 더블 적립금 같은 것들. 나만 몰랐구먼.
이젠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는지 일단 확인한다. 새로 생긴 습관이다. 어떤 책은 전자책이 있고, 어떤 건 아직이다.
신간이라면 전자책 출간 알림 신청을 한다. 굳이 신청 버튼을 눌러 알람을 받는 이유는 기다리는 독자가 여기 한 명 더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럼 전자책 시장이 더, 더, 더 넓어지겠죠!
얼마 전엔 새로운 전자책 서비스를 만났다. 북클럽이다. 이건 또 뭐냐, 그러니까 한 달에 요금을 얼마 내면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서비스라는데… 갸우뚱하다가 '북 스트리밍'이라는 표현을 보고 아! 하며 이해했다. 말하자면 음악 스트리밍 같은 거군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다면 원하는 책을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서비스. 크레마를 비롯한 전자책 리더기와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단말기를
두루 사용할 수 있다. 회원 가입, 할까 말까?
북클럽 회원이 무제한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는 책의 목록은 아직 한참 짧다. 그래서 좀 망설이다 첫 달은 무료라길래 소심하게 가입했다.
이제 보니 매일 새로운 책이 부지런히 추가된다. 덩달아 나도 매일같이, 오늘은 또 무슨 책이 새로 들어왔는지 체크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며칠 사이, 벌써 서른 권가량의 책이 '나의 북클럽' 바구니에 자리 잡았다. 하나씩 야금야금 읽어야지. 북클럽 서비스는 아직 여백이 많고,
그만큼 발전의 여지가 있다. 그 속도는 내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빠를 것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대로 여행 가방을 꾸려야 한다. 한 달 반 일정으로 긴 여행을 다시 떠난다. 이미 크레마 그랑데 안에 전자책 파일이 그득하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실시간으로 무슨 책이 새로 들어왔는지 검색하겠지. 하루 중 몇 시간은 새로운 나라의 낯섦을 한껏 즐길 것이고, 또 몇
시간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일상을 꾸려갈 것이다. 크레마 챙겨 들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글ㆍ사진 | 신예희(작가)사진 | 김잔듸(516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