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판업계, 아마존의 '갑질'에 불만 팽배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통신판매 업체인 아마존의 '갑질'에 대한 일본 출판업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도 작년 8월 실시한 현장조사에서 아마존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출판사에 불합리한 계약을 강요,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일본에서 종이 서적 유통의 10% 이상, 전자서적은 시장점유율이 약 50%에 이르는 절대 강자이자 "최대 서점"이다.
판매력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출판업계와 다소 마찰이 있더라도 대립이 표면화되는 일은 드물었다.
불만이 있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가던 출판업계에서 최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8일 전했다.
아마존이 새로 도입한 '킨들 언리미티드(kindle unlimited) 서비스'가 계기가 됐다. 아마존은 세금을 포함해
월 980엔(약 1만 원)만 내면 12만 권 이상에 달하는 일본 서적과 120만 권 이상의 외국 서적을 온라인에서 무제한
읽을 수 있는 서비스를 작년 8월 도입했다. 출판사는 독자들이 읽은 실적에 따라 아마존으로부터 수익금을 받는 구조다.
"돈을 감당할 수 없게 됐으니 (귀사의 책을) 킨들 언리미티드 대상 서적에서 제외하고 싶다"
한 대형 출판사 중역은 작년 여름 아마존 재팬 담당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서비스가 시작된 직후부터 독자가 쇄도하자 이 출판사의 책을 무제한 읽기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통보였다.
예상보다 많은 독자가 몰리는 바람에 출판사 몫으로 준비했던 예산을 초과했다는 게 이유였다.
출판사 중역은 "전화 한 통으로 갑자기 제외하다니 너무 일방적"이라며 분개했다.
일본 굴지의 대형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도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 개시 초기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자사 서적 1천200권이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태를 겪었다. 고단샤는 작년 10월 "일방적 중단조치에
강력히 항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마 요시노부 사장(48)은 "저자들과 협의해 서비스 대상 서적으로 결정했는데
일방적으로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하다니 저자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느냐"며 노발대발했다.
도모타 유스케(49) 아마존 킨들 콘텐츠사업부장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몇 가지 있었던 게 사실이며 그래서 출판사에
조치를 부탁했다"면서도 "(출판사 측이) 공식항의하는 형식으로 나온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언리미티드 서비스와 관련한 아마존의 섣부른 대응이 출판업계가 목소리를 내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쌓였던 불만을 분출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중견 출판사의 한 간부는 아마존에서 판촉 캠페인 제안을 받을 당시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귀사의 상품을
취급할 수 없다"는 위협에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아마존의 제안을 얼른 받아들이지 않자
아마존이 사이트에 자사 서적을 "품절"로 표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서점은 갈수록 감소하는데 아마존에서
책을 팔 수 없게 되면 치명적"이라는 게 이 간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다네시게 마사히코(47) 아마존 서적사업본부장은 고의로 "품절" 표시를 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만 "협력하는 출판사의 재고를 많이 보유하고 그렇지 않은 출판사 책은 재고에 한도가 있다. 고객이 왔을 때
재고가 없는 경우는 있다"는 말로 취급에 차등을 두고 있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아마존과 출판업계의 마찰은 미국에서도 있었다. 아마존이 2007년 미국에서 전자서적 사업을 시작할 당시 아마존은
책값을 권당 9.99달러(약 1만1천 원)로 책정했다가 값이 더 비싼 종이책이 팔리지 않을 것을 우려한 출판업계가
들고 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일었었다. 대형 출판사인 맥밀런이 가격을 출판사가 정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자
아마존이 한때 이 회사의 종이책과 전자서적 모두를 판매대상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업계 전체가 시끄러워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마존은 지금 유럽에서도 공정거래 당국의 주시 대상이다. 유럽위원회는 2015년 6월 전자서적 거래계약과 관련,
아마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일본 공정거래 당국도 작년 8월 현장조사를 통해 출판사 측이 다른 판매 경로로 책을 싸게 팔려고 하면 아마존 측이 그와 같거나
더 싼 값의 계약을 요구해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우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아마존이라는 '흑선'(에도시대 말기에 일본인이 서양배를 부른 이름)에 맞서 자기변혁을 해보려는 출판업계의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