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사회, 전자책 스타트업 리디가 유니콘 등극한 비결은…
리디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유니콘이 됐다. 〈상수리 나무 아래〉는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이다. 웹소설 세계에선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비견된다. 주인공은 맥시밀리언이라는 소녀다. 맥시밀리언은 공작의 영애로 태어났지만 말더듬이다. 귀족들
사이에선 왕따를 당하다 결국 천민 출신 기사 리프탄 칼립스와 정략 결혼을 한다. 첫날밤만 치르고 전장으로 떠났던 리프탄은
영웅이 돼서 돌아온다. 리프탄은 맥시밀리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제 맥시밀리언의 차례다. 맥시밀리언은 마법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세계탑으로 떠난다.
웹소설에 관심이 없고 판타지 소설에 무심하고 로맨스 소설엔 둔감한 독자들한텐 〈상수리 나무 아래〉의 시놉시스는 흥밋거리가
아닐 수 있다. 2017년 1월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 〈상수리 나무 아래〉가 리디라는 스타트업을 한국의 18번째 유니콘으로 재탄생
시켰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디는 최근 싱가포르투자청과 산업은행 그리고 엔베스터와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로부터 1200
억원을 투자 받았다. 1조6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았다. 기업 벨류 1조원 이상이면 유니콘이다. 리디는 한국에서 탄생한
열여덟번째 유니콘이 됐다.
웹소설 ‘상수리 나무아래’대박
투자처를 찾아다니는 넘치는 유동성 덕분에 스타트업에 대한 기업 가치 평가가 후해진 건 사실이다. 2021년 1년 동안만 해도
유니콘이 7개나 추가됐다.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프롭테크 스타트업 직방, 신성식품 유통 플랫폼
마켓컬리, 역시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빗썸, 리빙유통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 그리고 리셀플랫폼 당근마켓
등이다.
그런데 리디의 합류는 이런 유니콘들과 비교해서 독특하다. 대다수 K유니콘들은 의식주 유통 플랫폼들이다. 아니면 금융플랫폼
들이다. 반면에 리디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탄생한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다. K유니콘의 대열에 콘텐츠 스타트업이 합류했다는
뜻이다.
리디는 원래 2008년에 창업했다. 시작은 전자책 유통 서비스 리디북스였다. 리디북스라는 이름부터가 책이 연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의 리디는 책 그 이상이다. 웹소설과 웹툰의 유통까지 시장 영역을 확장했다. 나아가서 콘텐츠의 지식재산권 비즈니스
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IP비즈니스는 네이버와 카카오도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분야다.
K유니콘 가운데에는 콘텐트 스타트업이 리디가 처음이지만 해외에선 여럿이다. 영어교육콘텐츠 스타트업인 듀오링고와 콘텐츠번역
스타트업인 아이유노SDI가 대표적이다. 듀오링고는 전세계적으로 영어 교육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아이유노SDI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자막과 더밍 수요가 증가하면서 유니콘의 반열에 올랐다.
아이오뉴SDI의 글로벌 번역 시장 점유율은 15%에 달한다. 의식주의 디지털모바일화에 집중하거나 해외 유니콘들의 패스트팔로워인
국내 스타트업들과 달리 해외 시장에선 콘텐츠도 충분히 유니콘이 된다는 경험이 충분히 쌓이고 있다. 그래서 리디가 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은 건 의미가 크다.
솔직히 리디는 10년을 헤맸다. 2008년 창업 당시만 해도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있을거란 기대에서 출발했다. 전자책 유통 전문
플랫폼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잡은 이유다.
당시엔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혁신이었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전자책은 새로운 혁신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 정도다.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지도 않았다.
리디는 만년 적자 기업이었다. 이때 리디는 〈상수리 나무 아래〉를 만난다. 한국의 출판 시장의 크기는 매출 기준 연 7조원 안팎이다.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도 전자책은 성장세이긴 하다. 리디는 더디게 성장하는 전자책 시장에 기댄채 근근히 버텼다.
그런데 10년 넘게 전자책 시장을 경험하면서 전자책 매출의 70% 이상이 로맨스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같은 웹소설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웹소설 분야는 거의 매년 70% 이상씩 성장하는 분야였다.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잘못된 전제였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 읽고 싶어한다. 독서의 대상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이었다.
특히 2017년 리디북스를 통해 유통된 웹소설 〈상수리 나무 아래〉는 리디에게 웹소설의 무한 가능성을 일깨워진 콘텐츠였다.
김수지 작가의 〈상수리 나무 아래〉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해적판 번역본이 나돌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대박 콘텐츠가 유통 플랫폼의 성장을 견인한다는 건 영상 OTT시장에서도 입증된 성공 방정식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로 J커브를 그리기 시작한 넷플릭스나 마블 시리즈로 랜딩한 디즈니 플러스만 봐도 알 수 있다. 리디는
2019년부터 단순히 출판사들이 생산한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전환해서 유통하는 대행사에서 자체적인 웹소설과 웹툰을 유통하는
플랫폼으로 피봇팅을 한다. 〈상수리 나무 아래〉 때문에 리디북스 플랫폼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이들을 상대로 더 많은
콘텐츠를 유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웹툰 플랫폼으로 가속페달
지난해 네이버는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6억 달러에 인수했다. 카카오는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를 6천억원에 인수했다.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5천억원에 인수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빅테크들이 웹소설과 웹툰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역설적
으로 웹소설과 웹툰 시장 때문이 아니다. 웹소설과 웹툰이라는 1차 콘텐츠과 영화나 드라마라는 2차 콘텐츠로 이어지는 콘텐츠 벨류
체인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에서 한국과 대만이 중요한 이유는 완제품인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필요한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영상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은 여전히 할리우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과거 5대 메이저로 불리던 할리우드의 콘텐츠 지배권은 이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로 재편됐지만 여전히 주도권이 북미 대륙의
서부에 있는 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에 콘텐츠 비즈니스의 반도체가 될 수 있는 원전 콘텐츠는 어디서든 생산될 수 있다. 재미
있는 이야기는 연고지가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영어 크리에이션 콘텐츠를 선점하기 위해 왓패드나 래디쉬를 인수했다면 리디의 선택은 달랐다. 리디는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도 웹소설과 웹툰 플랫폼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수리 나무 아래〉와 같은 작품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봤다.
리디는 2019년부터 리디의 중심축은 전자책 유통에서 웹소설과 웹툰 유통 플랫폼으로 이동시켰다. 웹소설은 원래부터 리디가 강점을
가진 시장이었다. 전자책 유통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크기 때문이다.
대신 리디로서도 웹툰은 도전이었다. 한국의 웹툰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조538억원이다. 2018엔 고작 4663억원이었다. 이제까지
콘텐츠 유니콘이 없었던 이유는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성장하는 시장을 올라타야 유니콘이 된다. 리디는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고속성장 시장을 찾아냈고 올라타면서 유니콘에 등극하는데
까지 성공했다. 성장하는 시장이 없었던 게 아니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웹소설과 웹툰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리디의 매출 구조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8엔 리디의 매출은 793억원에 불과했다. 전자책 유통 플랫폼에서 종합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전환한 이후 2020년엔 매출 1556
억원을 넘어섰다. 2배 증가했다. 2021년 3분기까지만 해도 이미 1491억원 달성했다. 무엇보다 2020년 영업이익 26억원으로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리디에 등록된 콘텐츠는 23만종에 달한다. 등록작가는 10만명이다. 누적판매액이 1억원을 돌파한 작품만 500종
이상이다.
웹툰 시장의 경우 웹툰 전용 플랫폼 만타의 성공이 컸다. 만타는 2020년 11월말에 런칭됐다. 리디가 유니콘이 된 건 〈상수리 나무 아래〉
와 같은 웹소설이 뜨고 그렇게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웹툰을 볼 수 있는 만타가 국내외에서 대박이 난 덕분이었다. 특히
리디는 만타의 가격 구조를 경쟁 웹툰 플랫폼과는 다른 형태로 설계했다. 만타는 월구독형태의 웹툰플랫폼이다. 다른 플랫폼들은 개별
작품을 회사별로 구매하게 유도한다. 대신 해당플랫폼의 코인을 쓰게 한다. 그렇게 현금을 적립시키고 소비자를 락인시키는 전략이다.
반면 만타에선 모든 콘텐츠를 월정액으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영상 플랫폼들과 가격 정책이 같다. 대신 만타는
장르를 다양화시켰다. 로맨스, 판타지, 스릴러, SF, 논픽션 등 어느 장르 어떤 작품에서든 롱테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리디는 2023년 증시 입성이 목표다. 리디를 창업한 배기식 대표는 원래는 삼성전자에서 벤처투자를 담당했었다. 아마존킨들을 보고
전자책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초엔 웹툰 시장도 고민이지만 네이버 같은 빅테크가 선점한 탓에 우회로를 선택했다.
리디의 목표는 처음부터 전자책 유통업이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플랫폼이었다는 뜻이다. 〈상수리 나무 아래〉로 독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이제 때가 된 셈이었다. 리디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유니콘으로 태어났다.
- 신기주 북저널리즘 콘텐츠총괄이사 출처 : 중소기업뉴스(http://www.kbiznews.co.kr) 2022.03.14 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