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들 터 잡고 일한 시간, 존중됐으면
출판계가 흉흉하다. 2023년 봄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전자책 유출 사고가 터지고, 서울 마포구가 위탁
운영하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피(P))가 파행 운영돼 입주사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느닷없이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을 누락했다며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윤철호 회장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한국출판인회의·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 등 7개 단체는 8월22일 공동성명을
내고 문학·출판 생태계 복원을 촉구했다. 우울한 소식 가운데 김정옥 어떤책 대표와 조용범 에이치비프레스
대표에게 연락했다. 부부인 두 사람은 <한겨레21>의 오랜 독자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얼마 전 에세이 <북촌 북촌 서촌>(에이치비프레스)이 나왔고, 지금은 9월 나올 책을 준비한다. 지역에
사는 기혼 유자녀 여성의 논픽션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어떤책)과 케이(K)-푸드 시스템 탐사 르포 <모던
키친>(에이치비프레스)이다.”
―어떤책과 에이치비프레스는 어떤 의미인가.
“각자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퇴사와 더불어 브랜드를 열었다(어떤책은 2016년, 에이치비프레스는
2018). ‘어떤책’은 정희진 선생의 수업을 듣다가 착안했다. 누구나 자신을 강렬하게 사로잡을 어떤 책을
만나기를 갈망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아, ‘어떤 책?!’ 싶었다. 에이치비(HB)는 연필심의 적정한 진함,
중용이라고 할까. ‘우리는 모두 HB처럼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최근 전자책 유출 사고가 있었는데 피해는 없는지.
“우리 책도 한 종 유출됐다. 그런데 직접 연락받은 적은 없다. 피해자 활동을 하지 않으니 이 문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다만 신간 전자책은 해당 서점에 유통하지 않고 있다.”
―요즘 출판계가 근심이 많은 것 같다.
“(입주사는 아니지만) 플랫폼P 문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새로 마련된 입주사 자격에 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거주자여야 한다는 것이 특히. 마포구에 사업장을 낸 출판사는 마포구에 세금을 내게 돼 있는데,
마치 마포구민 세금이 낭비된다는 취지의 논평이 이해되지 않았다. 몇 년 전 마포구에만 3천 개의 출판사가
있다는 자료를 봤다. 마포구는 서울의 출판 1번지라 할 수 있는데, 출판사들이 터를 잡고 일한 오랜 시간이
무시당하는 경험이었다. 자치단체장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특히 문화예술계에
불안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설득과 합의를 바탕으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지키는 과정이 전제됐으면
좋겠다는, 아주 기초적인 생각을 한다.”
―최근 본 책 중 가장 흥미로운 건.
“올여름엔 추리소설을 연달아 읽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추리소설 전문서점 ‘미스터리유니온’이
있는데, 그곳에서 여름 특집 시리즈로 살인사건이 이루어진 장소(기차, 크루즈, 밀실, 호텔, 주방)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어줬다. 퇴근한 저녁, 무더위를 뚫고 미스터리유니온에 들어서면 에어컨 바람의 냉기가
훅 밀려오고 추리소설로만 꽉 찬 서가 한가운데 열 명 정도 어깨를 맞대고 모여 있었다. 이 모임에서
<나일강의 죽음> <매스커레이드 호텔> <자물쇠 잠긴 남자> 등을 읽었다. 훌륭한 여름 나기가 됐다.”
―두 분은 앞으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책은 지금처럼 한국이란 배경에 단단히 발붙이고 글쓴이의 고유한 서사가 돋보이는 에세이를 출간
하면서 실용서, 자기계발서와 같이 새로운 분야 책들도 기웃거리려 한다. 어쩌면 소설을 펴낼 수도 있다.
에이치비프레스는 개성이 강한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한다.”
―<한겨레21>에 바람이 있다면.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무척 좋아한다. 미국을 들썩인 가족 살인사건을 취재한 르포물로
당시 매체에 연재됐던 글이다. 꼭 범죄사건이 아니더라도 경제, 산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직접 발로
뛰는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스토리성 돋보이는 긴 글을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기승전21 1479호
이유진기자 frog@hani.co.kr 2023-08-31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