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서점, ‘책’ 밖에 눈을 돌리다
서점, ‘가늘고 긴’ 생존은 가능한가
지난 2월2일,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라인 종합 쇼핑몰인 ‘인터파크’ 산하의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도서’에 공지가 올라왔다.
2월20일부터 인터파크도서 내에서 음반이나 DVD의 구입이 더 이상 불가하며, 3월1일부터는 음반/DVD 페이지의 운영도 종
료한다는 공지였다. 서점은 이름대로 ‘책을 파는 가게’라는 뜻이지만, 음반이나 영상 소프트의 판매는 문방구와 더불어 서점의
중요한 판매 품목이었다. 가면 갈수록 일부 아이돌이나 팬덤이 강한 인기 가수를 제외하면 한국의 음반/DVD 판매율이 주는 것
도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온/오프라인 서점은 여전히 음반과 영상 매체의 판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즉,
인터파크도서의 이 공지에는 어떤 의미에선 이제 조만간 인터파크도서의 서비스 종료도 머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물론 그렇게 갑작스러운 소식도 아니다. 인터파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96년에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라인 종합 쇼핑몰’이지만, 이미 그 명성은 퇴색된지 오래였다. 후발주자인 옥션이나 11번가 같은 경쟁사에 일찌감치
밀린 것은 물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같이 포털 사이트가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이 등장하자 더욱 인터파크의 존재감은 줄어
들었다. 대신 인터파크는 일찌감치 호텔 숙박 및 항공권 예약, 각종 공연 티켓 예약에 나섰다는 것을 이용하여 ‘여행’과 ‘공연’에
특화를 하고자 했다. 그러나 코로나는 하필 인터파크가 근래 특화했던 두 분야에 함께 큰 피해를 입혔다.
가뜩이나 위태했던 인터파크의 재정은 악화되었고, 결국 2021년 인터파크는 숙박 시설 예약을 전문으로 하는 ‘야놀자’에 인수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인터파크의 새 주인이 된 야놀자는 인터파크의 특화 부문인 여행과 공연 티켓 판매를 제외한 나머지 부문
을 별도의 자회사인 ‘인터파크커머스’로 분리해, 가까운 시일 내에 글로벌 쇼핑몰 ‘큐텐’(Qoo10)에 매각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인터파크커머스’의 설립일이 공교롭게도 3월1일이다. 어떤 의미로 인터파크도서의 사업을 축소하는 것은, 그나마 인터파크의
비주력 영역을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온라인 서점’에 대한 기대감은 현저하게 낮음을 보이는 대목이다.
대형 서점, ‘책’ 밖에 눈을 돌리다
그렇다면 인터파크도서가 아닌 다른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상황은 괜찮을까. 허나 재정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2022년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곳이 많지 않아 작년의 상황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교보문고’나 ‘영풍문
고’ 같은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 서점은 물론 ‘알라딘’(알라딘커뮤니케이션), ‘예스24’ 같은 온라인 중심의 대형 서점 모두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경영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는 코로나 이전부터 걸핏하면 영업손실을 몇 차례나 기록하기
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서점은 각각 교보그룹과 영풍그룹이라는 재벌 산하의 서점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재정적으로는 적자여도 상대적
으로 튼튼한 모기업의 지원으로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 예스24 역시도 2022년 3분기까지 발표된 재정 현황에서 적자로 접어
들었지만, 이곳 역시 2003년부터 중견 섬유회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구 한세실업)에 인수된지 오래다. 온라인에서 시작한
서점 중에서는 현재 유일하게 전용 콘서트홀과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2015년에는 각종 교과서나 참고서가 중심인 출판사
동아출판(구 두산동아)을 인수하고, 전자책 전문 출판사 YNK미디어를 설립하는 등 온라인 서점 중에서는 가장 광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댈 수 있는 자본이 없는 곳들은 무척이나 불안한 흐름에 놓여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더불어 오프라인 대형
서점의 대표 주자였던 반디앤루니스(서울문고)의 2021년 도산이 대표적이다. 이미 2018에도 영풍문고가 반디앤루니스의 인수를
추진하다 포기할 정도로 상황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코로나의 확산은 이미 위태했던 반디앤루니스의 경영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
고, 결국 한 순간 오프라인 지점은 물론 온라인 도서몰의 판매도 모두 중단되었다, 2022년에 새로운 기업에 인수되어 2023년 다시
도서 판매를 시작한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반디앤루니스의 새 도전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래서일까. 현재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중에서는 몇 안 되게 서점업에만 집중하고, 이렇다 할 모회사도 없는 ‘알라딘’은 2023년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름만 보고 있으면 어딘가 영화나 만화의 후속작을 암시하는 ‘투비컨티뉴드’(TO BE CONTINUED…)
라는 명칭의 ‘콘텐츠 플랫폼’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는 고사리박사 작가의 만화 ‘극락왕생’이나 수신지 작가의 만화 ‘곤’(GONE)
등으로 조금씩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딜리헙’이나 ‘포스타입’ 같은 창작자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곳이자 자유롭게 판매도
가능한 ‘오픈마켓’ 형식의 콘텐츠 공개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
대형 서점들이 단순히 도서의 판매를 넘어 스스로 콘텐츠의 제작자나 중개자가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교보문고는 설립
초기부터 출판사를 병행했었고, 이후 2010년대에는 ‘톡소다’이라는 이름의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예스24는 동아출판 인수, YNK미디어 설립과 더불어 ‘스토리24’라는 웹소설 중심의 플랫폼을 운영했다. 어찌보면 알라딘의
‘투비컨티뉴드’는 대형 서점의 본격적인 콘텐츠 사업 진출이라는 점에서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투비컨티뉴드는 앞서 언급한 톡소다나 스토리24와 큰 차이점이 있다. 투비컨티뉴드의 롤모델이 되었을 딜리헙이나 포스타입처럼
소설이나 웹툰은 물론 창작자가 대중들에게 올리고 싶은 그 어떤 형식의 작품도 게재와 판매가 가능하다는 개방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톡소다 역시 자유 연재 코너가 존재하나 이는 소설에만 한정되고 있으며, 스토리24는 이미 작가의 자유 연재 서비스를 중단한지 오래다.
대형 서점들이 직접적인 콘텐츠 개발에 나서도 자신들이 주도하는 형태로 흐르고 있다면, 알라딘은 좀 더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은 이들을 향한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투비컨티뉴드가 오픈마켓형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점에서도 딜리헙이나 포스타입보다 무척이나 후발주자기에 빠르게 시장에 안착
하기 위한 전략을 쓰는 점도 돋보인다. 어느 정도 팬덤이나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SF작가 위래, 곽재식이나 만화가 선우훈, 사진가
케이채처럼 독립적인 창작의 자세를 지닌 작가를 영입하는 식으로 기존 플랫폼에 맞불을 놓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순두부 열라면’
레시피를 SNS에 올려 한 순간에 유행시킨 음식 전문 인플루언서 ‘마포농수산쎈타’를 영입하는 등, 소설이나 만화에 한정되지 않은 영입
전략을 구사하며 차별성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서점, ‘가늘고 긴’ 생존은 가능한가
이렇게 대형 서점들은 대형 서점 나름대로 갈수록 지반이 허약해지는 서점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에 나서는 중이다. 그러나 대형
서점의 이러한 시도들은 마냥 산업계 내부에서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등장해 알라딘과 예스24의 또 다른 중요 사업 부문이
된 ‘오프라인 중고서점’은 이전부터 각각의 지역에서 운영되던 작은 중고전문서점을 위협한다는 면에서 큰 비판을 받아 서울시 차원에서
여러 지역별 중고서점을 하나로 모은 공공 중고책 플랫폼 ‘서울책보고’를 만들었던 것처럼, 알라딘의 ‘투비컨티뉴드’ 역시 아직 시장이
그렇게 튼튼하지 않고 스타트업들이 주로 진출하던 ‘오픈마켓 콘텐츠 플랫폼’에 중견 사업체가 뛰어든 것은 좋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을 가지는 시선이 일부 존재한다.
오프라인 서점 역시도 이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양대 서점, 후발주자로 등장해 점차 지점을 넓히는 아크앤북(OTD코퍼레이션)이나
종로서적 모두 마찬가지로 점차 도서 매대를 줄이고 문방구나 CD/DVD, 전자제품 및 음향기기의 판매대를 넓히고 동시에 식당이나 카페 등
임대 구역을 늘린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전략은 본래 도서/음반 대여업에서 시작해 빠른 속도로 일본 대형 서점으로
성장한 ‘츠타야’(TSUTAYA)가 대다수 매장을 스타벅스와 협력하던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나, 정작 벤치마킹으로 삼은 츠타야보다도 책을
위해 할애한 자리가 협소해졌다는 점이 지적을 받는다. 비록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이런 오프라인 서점의 시도는 한동안 주춤해졌지만,
코로나에 대한 각종 규제의 해제 시도는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감소한 매출을 늘리기 위해 더욱 도서 매대가 아닌 판매 구역을 넓힐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서점들이 이들 대형 서점처럼 칭찬과 비판이 엇갈리는 사업의 재편과 확장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기업도 대기업은 일부일
뿐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각각의 지역마다 존재하는 중소기업이나 마을기업인 것처럼, 서점 역시도 상대적으로 소수 지점에 불과한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나 양대 온라인 서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각각의 지역이나 동네별 서점들이다. 이들 중에서는 경기/인천 지역의 ‘경인
문고’나 부산의 ‘영광도서’처럼 각 지역의 터주대감처럼 자리잡은 대형 서점도 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하나의 유행을 넘어 흐름으로 정착한
‘독립서점’의 형태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독립서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의 동네서점이 다른 대형 서점과 큰 차이 없는, 베스트셀러를 전면에 내걸고 참고서가 매출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며 여력이 있으면 각종 문방구나 CD 등을 판매했던 행태를 보였다면, ‘독립서점’은 서점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서점 주인의 적극적인
‘큐레이션’이 이뤄진다는 차이가 있다. 독립서점이 등장하던 초창기처럼 독립적인 출판물의 유통에만 집중하는 곳도 있고, 독립출판물이
중심이 아니어도 서점의 운영자가 자신이 진정을 팔았으면 하는 책이나 환경, 페미니즘, 인권, 만화 등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모습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형 서점은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번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번화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리는 곳이어도 항상 들르는 곳은 아니며,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갈까운 골목에 위치한 서점이 지니는 이점은 여전히 적지 않다.
게다가 아무리 온라인 서점이 어느 정도는 일상화가 되었다고 해도, 온라인 서점에서는 채 느끼기 어려운 특징들이 아직 오프라인 서점에 존재
한다. 책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들여다보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서가나 매대를 둘러보다 우연히 자기에게 맞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
특히 적극적인 큐레이션이 이뤄지는 서점이라면 더욱 몰랐을 책을 알게 되는 경험 등은 오프라인의 서점이 주는 고유한 특색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2년마다 발표한 ‘한국서점편람’의 2022년판에서는 2021년 기준 전국 서점수는 2528개로, 2019년
2320개보다 증가하며 2003년 이후 감소세만 이어지던 흐름에 처음으로 반전이 이뤄졌음을 밝혔다. 다만 서점편람은 이러한 서점수의 증가가
조사 방법의 변경과도 연관되어있음을 언급하고, 여전히 많은 서점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말하며 섵부른 희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들을 고려해도 코로나의 시기를 거치는 와중에 온라인 서점도 아닌 오프라인 서점의 수가 늘었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소식이다.
이렇게 대형 서점들은 전통적인 도서류 판매에서 벗어나 각종 콘텐츠의 판매 및 유통으로 손을 뻗치며 전통적인 출판 시장의 감소와 달리
급성장 중인 웹툰/웹소설 시장의 상승세와 동반하며 성장을 하려 한다면, 2010년대 이후 각 지역별로 생긴 동네서점이나 독립서점들은
그저 베스트셀러 중심이나 몰개성적으로 신간을 나열하는 방식을 벗어나 책 자체가 지니는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모색
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더욱 책이 지니는 심미적 가치, 책의 저자나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에 열광하거나 공감하여 구매하는
‘굿즈’(goods, 상품)으로서의 책, ‘지지와 연대의 표현’으로서의 책이 늘어났음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과연 2023년의 서점은 각자
어떠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새로운 생존의 길을 고민할까. 2023년에 등장할 서점들의 다양한 시도와 2024년에 발표될 한국
서점편람의 최신판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성상민 문화평론가 gasi44@daum.net 2023.02.27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