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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의 IT 사회학] 최신 디스플레이 트렌드는 눈의 편안함

2020.09.10 12:04

신세대 e잉크 채택한 e북 리더 양산… 

반응속도 개선, 컬러 제품도 도입

 

자연보다 인공물을 보는 일이 많은 생활이다. 소위 ‘스크린 타임’은 점점 늘어난다. 거북목을 만드는 근골격계의 문제도 걱정이지만 

눈의 건강도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블루라이트가 눈에 좋지 않다며 시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망막에서 빛을 받는 분자인 레티날이 블루라이트를 받으면 빛을 느끼는 

광수용기 세포를 죽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논문으로 나온 것. 하지만 이는 연구실에서의 실험일 뿐 임상적 의미는 없다는 것이 

미국안과학회의 공식 의견이었고 논문 저자도 동의했다. 대자연의 블루라이트가 훨씬 강하지만, 햇빛 쏟아지는 화창한 풍경을 바라

보는 일을 피하라는 의견이 무의미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블루라이트가 생활 사이클을 교란한다는 것만은 정설이다. 취침 전 독서에서 종이책과 태블릿의 비교 군을 보니 스크린을 

보는 쪽이 잠들기 힘들고, 얕게 잠들며, 멜라토닌 분비량이 적을뿐더러 생체시계가 뒤틀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고 한다.

 

e잉크의 강력한 장점은 저전력 소비

 

이처럼 종이책을 보는 편이 좋을 것 같으니, 읽기에 특화된 전자기기는 종이 느낌을 살리려 한다. 종이를 화면에 바른듯 한 느낌을 

주는 ‘e잉크’를 채택한 이북(e북) 리더기 시장이 열린 지도 15년이 넘었다.

 

종이처럼 자연의 빛을 반사하여 보여주는 것이기에 위화감이 덜하다. 종이처럼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기에 조명이 필요하지만, 

근래 제품들은 백라이트가 내장되어 종이 뒤에서 빛을 비추는 느낌이다.

 

아마존 킨들은 물론 국내의 다양한 전자책 제품에서 채택된 이 e잉크는 LCD나 OLED 등 다른 디스플레이 기술에 비하면 발전 속도가 

영 더디다. 10년 묵은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는 요즘 눈으로 보면 딱 봐도 못 봐주겠지만, 10년 묵은 이북 리더도 시중에 풀려 있는 신

제품과 얼핏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

 

명암비와 반응 속도가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극적이지 않다. 어차피 명암비는 미백지에 진하게 인쇄된 서적들을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잘해야 윤전기에서 갓 나온 갱지 느낌에 머무른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이북의 황금기에는 시장이 폭발했지만, 

그 이후는 별다른 혁신 없이 시장 전체가 활기를 잃고 말았다.

 

기술 발전이 느린 이유는 아무래도 e잉크가 사실상 독점 상태이기 때문. MIT 미디어랩에서 스핀오프된 스타트업이었으나 그 특허와 

함께 현재는 대만 업체에 인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올해는 가시적인 변화가 보인다. 신세대 e잉크를 채택한 양산품이 출시되기 시작하고 있다. 두드러진 점으로는 일단 반응속도가 

꽤 빨라졌고, 컬러 상품이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잔상은 남지만 반응 속도는 일취월장해, e잉크 화면을 채택한 스마트폰도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다 보니 게임, 유튜브, 

카메라 등도 실행시키게 되는데 다소 굼뜨기야 하지만 참고 볼만한 정도로 발전했다.

 

컬러는 약간 물 빠진 느낌이지만 오래된 인쇄물처럼 오히려 레트로 감성이 살아난다. 양산품에는 4096색이 표현 가능한데, 

인쇄물이라고 생각하면 이 정도도 나쁘지 않다.

 

e잉크의 원리는 잉크 방울보다 작은 잉크 알갱이가 전하에 따라 화면에 들러붙게 하는 것이므로, 컬러도 궁극적으로는 색소 알갱이를 

띄우는 것이 될 전망이고 특허도 나와 있다. 다만 양산품 대부분은 컬러 필터 어레이라는 색소 필터를 덧씌워서 처리한다. 이미 3색 

컬러 e잉크 정도는 마트의 가격표 등지에서 볼 수도 있지만,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부터는 컬러 이북 제품을 우리 곁에서도 볼 수 

있을 듯싶다.

 

또 하나의 변화로는 스마트폰 트렌드를 따른 듯 반으로 접는 e잉크도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책은 역시 펼쳐야 맛인가 보다.

 

근래에 더불어 이북에 적용되기 시작한 기술로는 필압 감지 펜이 있다. 갤럭시 노트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하지만, e잉크에 직접 쓸 수 

있는 손맛은 남다르다. 초기 제품은 너무 반응이 느려서 잉크가 펜 놀림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올해 제품들은 태블릿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낙서 느낌을 내준다. 펜과 종이, 또는 문방사우라는 인류의 그 오랜 친구를 기술은 이제야 비슷하게 흉내 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e잉크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저전력 소비에 있다. 오로지 새로 그릴 때만 전기를 쓰기 때문에, 한 번 그린 뒤에는 

전기가 끊겨도 종이에 쓴 듯 그대로 유지된다. 펜을 움직이고 인쇄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쓰여도 기록된 종이에서는 에너지 이동이 없는 

것까지도 펜과 종이를 닮았다.

 

LED, OLED 기술이 아무리 고도화돼도 발전이 느린 e잉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계기는 우리의 감각이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종이라는 

유서 깊은 인터페이스가 주는 체험에 익숙해져 버렸거나, TV는 눈에 나쁘고 책은 좋다는 믿음이 단단하다면 e잉크는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좋고 비싼 모니터의 기준이 고해상도와 대화면이었다면, 점점 색감과 보기 편안함이 고급의 조건이 되고 있다. 

e잉크가 종이의 느낌을 주는 결정적 이유는 번들번들한 유리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e잉크를 쓰면서도 유리를 덧대는 일도 가끔은 

있지만, e잉크 화면 표면은 종이처럼 빛을 난반사하기에 번뜩이지 않아 종이 느낌을 낸다.

 

일반 모니터에도 안티 글레어(논 글레어) 제품들이 있다. 갑자기 화면이 암전될 때 내 얼굴의 멍한 표정이 비추지 않으니 몰입에도 

좋다. 하지만 이처럼 화면의 빛 반사를 없애기 위해 간유리풍의 코팅을 하면 아무래도 맑지 않고 탁해지는 단점이 있었기에, OLED 등 

고급 화면에서는 좀처럼 채택되고 있지 않다. 지문방지 액정 보호 필름을 붙이면 뿌옇고 어둡게 화질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사 빛 관리 여부가 최고급의 조건 될 것

 

하지만 반사되는 빛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최고급의 조건이 될 징조가 보인다. 애플의 초고가 모니터인 프로 디스플레이 XDR 역시 

초고가의 반사 방지 코팅을 마련했다. 반사율이 낮고 눈부심이 적은 나노미터 수준으로 유리를 각인한 나노 텍스처라고 불리는 새로운 

무광택 옵션을 제공한다. 모니터의 피부 또한 점점 더 중요한 스펙이 되고 있다.

 

최고급의 조건 중 또 하나는 화면 주사율의 개선이다. 1초에 몇 번 화면을 새로 그리느냐는 지표인데, 보통 모니터가 60Hz, 즉 60번 

새로 그린다. 일반적으로 화면 주사율이 높으면 부드럽게 느껴진다. e잉크가 보기 좋은 이유는 화면 주사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려 

놓으면 다시 그리기 전까지는 화면을 리프레쉬할 필요가 없다. 대신 모니터는 인체가 느끼지 못할 빈도로 갱신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은 120Hz가 되었다. PC는 한술 더 떠서 240Hz 주사율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게임용으로는 360Hz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과연 종이나 벽화나 벽보를 바라보는 편안함을 줄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트 1551호 (2020.09.14) (68)